한옥은 어떤 향기를 품고 있을까? 또 그곳에서 음악을 들으면 어떨까? 제법 선선한 가을하늘 아래 홍건익가옥에는 은은한 향이 퍼진다. 이곳에서 서울한옥위크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늑한옥’이 진행됐다. ‘아늑한옥’은 한옥에서 조향 체험을 하며 후각으로 아름다운 한옥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꾸려진 프로그램이다. 지난 9월 23일, 24일 이틀간 총 4회에 걸쳐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경쟁률이 꽤 높았다. 높은 경쟁률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당첨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아 몹시 들떠 있었다.
홍건익가옥은 서촌에 위치한 한옥으로, 1936년 완성된 건물로 대문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채 5동의 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석조우물, 빙고(얼음을 넣어두는 창고) 등이 구성돼 있다. 2011년 서울시가 매입, 2017년 공공한옥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근대 한옥의 특징인 대청에 설치한 유리문과 처마에 설치한 차양을 볼 수 있으며, 각 건물이 독립돼 있거나 출입구가 좁은 골목에 있는 등 전통 한옥의 특징도 보여준다.
키트는 30여 가지로 구성돼 있었다. 강사가 만들어 온 연꽃 핀 연못 옆 정자에서 즐기는 차 한잔의 향과 초가을 한옥 마당의 풀과 꽃내음 등을 맡아봤다. 이날은 후각만이 아닌 색감과 느낌을 담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향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을 듣고 각자 자신의 향을 상상했다.
같이 온 부부 중 남편은 야성적인 향을 만들고 싶었다며 이야기했다. 강사가 조언을 해줬다. 각자 향을 조합한 후, 알코올을 붓자 향수가 완성되었다. 강사는 1주일 뒤 개봉해 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향수를 가지고 돌아갔다. 1주일 뒤의 기대감을 안고서.
한옥이라는 고즈넉한 공간은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더욱이 기억에 오래 머무른다는 후각을 열어 향긋한 향을 맡다 보니, 지친 일상 속에 잔잔한 힐링이 된다. 물론 공간이 주는 즐거움도 한몫 더했다.
서촌에서 북촌으로 가다 보면 열린송현녹지광장이 보인다. 요즘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려 한창 핫한 곳이다. 이곳에는 조정구 건축가가 참여한 한옥 파빌리온 ‘짓다’가 있다. ‘짓다’는 지름 18m, 높이 3m 크기로 만들어졌으며 다른 작품 제작 때 사용한 부재를 재활용해 폐기물 없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강조했다.
이곳에서는 작가와 만남을 비롯해 9월 22~24일까지 한옥 파빌리온 ‘짓다’에서는 가을 저녁의 정취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한옥, 한 음(音)’ 음악회가 열렸다. 플루트 및 챔발로, 현악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24일에는 반도네온과 피아노 연주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시작 전부터 사람들은 그들의 공연 소리를 듣고,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진을 찍거나 연주에 열중했다. 한옥 파빌리온에서 듣는 공연은 좀 더 색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갇힌 공간에서 나무에 닿아 울리는 소리가 더더욱 멋을 선사했다.
담당자는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이런 곳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거나, 행랑에 앉아 지붕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며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3중 문으로 방충망과 한지 문 등을 각각 열 수 있다며 직접 보여줬다. 특히 2003년에 새로 생겼을 때, 사람들이 무척 놀라워 했다고 한다. 20년 전 이런 한옥을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담당자는 한옥 개, 보수 과정 등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북촌에 있는 안국동 한옥은 아름지기재단이 2003년 윤보선 생가의 행랑채를 개‧보수한 곳이다. 낡은 한옥을 고치거나 한옥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사례가 되기 위한 취지로 진행됐다며, 안국동 한옥은 그간 사택, 전시 등으로 이용해 왔으며 이번 한옥주간을 맞아 방문 및 물품 판매 등으로 9월 27일까지 개방된다.
“나 고무신 처음 신어봤어. 너 신어봤어? 진짜 편해.”, “나는 여기서 하늘이 보이는 게 너무 좋아.” 하늘을 바라보던 두 젊은이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또 다른 시민은 문을 보며 “한지로 이렇게 만드는 게 보통 정성이 아닐 텐데”라고 말하며 천천히 둘러봤다. 말 그대로 앞마당에서 하늘을 보니 선선한 가을바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옥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옥주간이 끝나도 한옥과 관련해서는 계속 만나볼 수 있다. 북촌문화센터에서는 북촌 문화 강좌 전시를 10월 3일까지 진행하며, 특별히 추석을 맞아 9월 29일과 30일에는 체험 프로그램 및 가야금 공연, 잔치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체험 프로그램은 사전 신청이 마감됐더라도 현장 접수를 병행하고 있으니 문의하고 방문해도 좋겠다. 또한, 북촌인문학 ‘이안이견(색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적 이야기)’이 9월 23일부터 10월 20일까지 열리고 있으며, 북촌도시재생지원센터 모두의 갤러리에서 10월 3일부터 14일까지 김선태 작가의 ‘한옥의 공간미와 전통 회화 전시’도 볼 수 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 2월 ‘서울시 한옥 4.0 재창조계획’을 발표하고 본격 추진에 나섰다.
불편한 옛 한옥이 아닌, 새로운 한옥으로 개념을 확장하고 심의 기준을 완화해 창의적인 디자인을 지원하고 곳곳에 한옥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서울시 한옥 4.0 재창조계획’은 새로운 한옥, 일상 속 한옥, 글로벌 한옥을 주요 과제로 삼아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2001년 북촌 가꾸기로 시작한 한옥 1.0은 이제 한옥 4.0으로 한층 더 도약을 꿈꾸고 있다. 북촌, 서촌, 은평 등 한옥마을을 조성했으며 또 계동과 누하동 등에 북촌, 서촌 공공한옥 글로벌라운지를 만들었다. 올해 3월 공공한옥으로 탄생한 ‘누하동 259’도 그 일환이다. 서울시는 그간의 성과로 2022년 아시아 도시경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지난 9월 5일 강동구 암사동 252-8 및 도봉구와 강북구, 동대문구 등 6개소를 한옥마을 대상지로 선정한 바 있다. 9월 선정된 대상지는 주말농장과 경작지 등으로 방치, 훼손이 심해 환경 개선이 꼭 필요한 곳으로 시는 향후 10년간 총 10개소 이상 한옥마을 대상지를 선정할 게획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옥은 어떤 것인가? 여전히 불편하고 오랜 건축 양식일까? 요즘 우리는 일상에서 꽤 많은 한옥과 접하고 있다. 편집매장이나 카페는 물론 한옥으로 지어진 로펌 등 꽤 다양한 형태로 접하게된다. 특히 앞으로 우리 전통 한옥이 서울 곳곳에 많아진다는 생각에 더 기쁘다. 우리의 일상 공간으로 또 서울의 관광지로 만나게 될 한옥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